돌아온 류현진의 멋진 재기 스토리…타격 타이밍 빼앗는 '두뇌 피칭'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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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류현진의 멋진 재기 스토리…타격 타이밍 빼앗는 '두뇌 피칭'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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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제이 권 기자]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왼손투수 중의 한 명인 워런 스판(전 밀워키 브레이브스)은 투수와 타자 간의 수싸움을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타격의 요체는 타이밍이고, 피칭의 핵심은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것이다.(Hitting is timing, pitching is upsetting timing.)”


웬만한 야구선수라면 이론으로는 다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러나 마운드에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피칭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빠른 볼과 빼어난 구종을 갖고 있는 투수일수록 그 같은 피칭을 하기가 더 어렵다. 자신의 주무기(상대 타자가 익히 알고 대비하는 구종)로 타자를 제압하고픈 욕망이 부지불식간에 생기기 때문이다.


스판이 1942년부터 1965년까지 통산 363승(245패)을 올리며 역사에 남는 대투수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스스로 말한 내용을 실천에 옮긴 점이다. 그는 평생토록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 피칭에 전념했다.


밥 커터의 저서 <워런 스판 스토리>에 따르면 스판은 선수 생활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1953년까지 패스트볼, 커브, 체인지업, 싱커순으로 많이 구사했다. 패스트볼을 가장 많이 던졌던 스판은 1954년 무릎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하며 직구의 위력이 줄어들자 ‘피칭 메뉴’를 바꿨다.


이 즈음부터 스판이 가장 많이 사용한 구질은 스크루볼이었다. 그 다음으로 커브, 슬라이더, 패스트볼, 팜볼순으로 많이 던졌다. 선수 생활 말년인 1963년부터는 너클볼까지 추가해 그해 23승(7패)을 거두기도 했다.


피칭 메뉴를 바꾼 것은 타자의 타이밍을 좀 더 효과적으로 빼앗기 위해서였다. 특히 스크루볼은 왼손 투수인 스판이 주로 오른손 타자를 공략할 때 즐겨 쓴 무기였다. 스판은 훗날 리치 웨스트콧의 저서 <스플렌더 온 더 다이아몬드>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경기 초반 상대 타선이 나의 직구를 어떻게 공략하는지를 보고 내 공의 위력을 점검했다. 타자들이 나의 직구를 제대로 당겨치거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날리기 시작하면 타이밍을 빼앗는 피칭모드로 전환했다.”


흥미로운 것은 스판이 선수 생활의 후반기에 가장 즐겨 던졌던 스크루볼은 손목과 팔을 반대로 비틀어던진 ‘오리지널’ 스크루볼이 아닌 현대 야구의 서클체인지업에 해당하는 구종이었다. 공의 궤적은 물론 스판 스스로 밝힌 공을 잡는 그립이 서클체인지업과 차이가 없다.


스판은 당시 동료 투수들에게도 OK 사인을 하는 것처럼 엄지와 검지를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어 공을 던지면 힘들이지 않고 가라앉는 스크루볼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가르쳐주기도 했다. 


스판이 그 옛날 오늘날의 서클체인지업에 해당하는 구종을 개발해 던진 것만으로도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개인통산 303세이브에 빛나는 덕 존스는 재미있는 피칭 레퍼토리를 갖고 있었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밀워키 브루어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에서 마무리 투수로 뛴 존스의 구종은 슬로 패스트볼, 체인지업, 디퍼런트 체인지업, 스크루볼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디퍼런트 체인지업(Different Change-up)’이다. 이것은 특별한 구종이 아니다. 체인지업을 다양한 스피드로 던진 것을 빅리그 전문가들이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존스는 ‘느린 체인지업, 더 느린 체인지업, 가장 느린 체인지업’을 구사했다. 체인지업은 그 자체로 오프스피드 효과를 거두는 구종임에도 존스는 똑같은 투구 동작과 팔의 궤적으로 체인지업을 다시 여러 스피드로 나눠 던졌다.


그 덕에 시속 90마일(145km)에 못 미치는 느린 패스트볼을 보완하며 마무리 투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투수로서 다채로운 공을 던질 수 있다면 타자를 제압하기 수월하다. 투수들이 오프시즌에 새로운 구종을 연마하곤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구사할 수 있는 구종이 많은 것과 좋은 투수가 되는 것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이 왼쪽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고 돌아와 3경기 연속 선발승을 거두는 등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류현진은 27일(한국시간) 토론토의 로저스 센터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홈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안타 4개를 내주고 3실점(2자책) 했다. 볼넷은 1개도 내주지 않고, 삼진 5개를 잡았다. 


6회초 토론토 내야진이 연거푸 실책을 범해 퀄리티 스타트(QS·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해내지는 못했지만 안정된 피칭으로 팀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류현진은 올해 5차례 등판에서 3승(1패)을 거뒀다.


이날 류현진은 솔로 홈런 2개를 내주긴 했지만, 타자의 타격 리듬과 밸런스를 빼앗는 피칭을 과시했다. 패스트볼 최고 스피드는 시속 146㎞에 불과했지만 구속을 시속 104㎞까지 낮춘 커브와 날카롭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앞세워 클리블랜드 타선을 요리했다. 


류현진이 승리투수가 된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마운드로 복귀한 이후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커브, 커터를 효과적으로 섞어 던지며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린 데 있다. 


류현진의 재기 성공 여부는 파워와 스피드가 아닌 타이밍 빼앗기에 달려 있다. 패스트볼이든 변화구든 느린 공과 더 느린 공, 빠른 공과 더 빠른 공을 어떻게 적절히 구사하며 타자들을 요리하느냐가 관건이다. 다음 등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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