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과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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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과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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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부의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 왼쪽부터 강금실 전 장관, 천정배 전 장관.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검찰 개혁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숙원이었다. 개혁 마침표를 찍기 위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비검찰 출신들이 검찰 개혁사(史)에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먼저 검찰 개혁 기치를 내건 이는 노 전 대통령이다. 판사 출신으로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한 그는 검찰과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길 원했다. 검찰 출신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첫 법무부 장관으로 역시 판사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를 임명하며 개혁 신호탄을 쐈다.

노 전 대통령은 비검찰 출신을 법무부 수장으로 앉히면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검찰을 정권 유지에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의 권한을 유지하면서도 법무부 장관 인사권으로 개혁 첫발을 안정감 있게 내딛어 보겠다는 의도였다.

강 전 장관 역시 인사를 검찰 개혁 출발점으로 인식했다. 특히 기존 관례를 깨고 검찰총장과 인사를 상의하지 않는 파격을 선택했다. 결국 법무부와 검찰은 충돌했다. 반대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검찰의 집단 반발이 거셌다. 검찰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에 ‘검사와의 대화’를 열었다. 대화로 개혁 동력을 찾아보겠다는 발상이었다.

‘검사와의 대화’ 참석 대상자는 평검사로 한정됐다. 대통령과 평검사 간 공개적인 대화, 그 자체만으로 정치개혁이자 검찰개혁이라는 말이 시중에 나왔다. 그러나 대화 실상은 개혁과 거리가 멀었다. 당시 허상구 검사의 “무의미한 토론”, 박경춘 검사의 “83학번 동기생 대통령”, 김영종 검사의 “대통령 청탁전화” 등은 국민들 머릿속에 반발심이 다분했던 질문으로 기억된다.

배석한 청와대 참모들은 검사들 행태에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려 한 악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민정수석으로 현장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검사들 태도는 목불인견(目不忍見·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음)이었다”고 회상했다. 민정비서관이었던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일 아침 ‘대통령 모욕할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었다”고 회고했다.

강 전 장관은 ‘검사와의 대화’ 기획자였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검사들과 공개 석상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검찰 개혁 여론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다만 개혁을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검찰 역시 대선자금 수사로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얻었다. 개혁 설득력을 낮추는데 성공하며 검란 명분 확보로 기세등등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주장은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청와대 보복으로 읽힐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렇게 강 전 장관의 개혁 명분은 약화됐다.

정권 내부적으로는 국회 도움을 받아 개혁의 제도화를 추진하지 않은 판단이 패착으로 거론된다. 노 전 대통령은 자율권을 보장하면 검찰에 자정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검찰의 선의를 믿은 결과는 참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오판이었다. 그는 훗날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제도 개혁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고 한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천정배 의원으로 비검찰 출신 장관 전통을 이어가며 검찰 개혁 과제를 추동했다. 천 전 장관은 당시 정권 실세로 불렸다. 헌정 사상 첫 수사지휘권을 검찰에 발동할 만큼 강단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이 항의성 사퇴를 할 정도로 천 전 장관 역시 사생결단식 저항을 받으며 별다른 성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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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정부의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 왼쪽부터 박상기 전 장관, 조국 전 장관, 추미애 장관.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 추진 과제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어받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첫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법무부와 검찰은 과감한 결단과 양보가 필요하다”며 정권 초기부터 개혁 속도전을 펼쳤다. 개혁 컨트롤타워 역할도 청와대가 직접 맡도록 지시했다.

대선 공약 1호인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의 막중한 과제가 조국 서울대 교수에게 맡겨졌다. 문재인 정부 첫 법무부 장관 역시 비검찰 출신 박상기 연세대 교수였으나, 개혁 로드맵은 사실상 조 교수가 민정수석 시절 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개혁안 발표를 이례적으로 청와대에서 직접 할 정도였다.

조 교수는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개혁을 설계했다. 1년 4개월 뒤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하며 개혁을 진두지휘할 동력도 얻었다. 조 전 장관은 청와대와 정부에서 일하기 전부터 검찰 개혁을 외치며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다.

암초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 불거진 딸 ‘입시 특혜 의혹’이 꼬리를 물며 조 전 장관은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야당은 연일 제보를 폭로하며 자진 사퇴 종용했다. 검찰도 수사에 들어가며 조 전 장관을 압박했다. 언론은 그의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아빠 찬스’ 의혹을 두고 여론은 크게 흔들렸다. 결국 조 전 장관은 취임 36일 만에 사퇴해야 했다.

검찰 개혁 불씨는 살아 있었다. 2019년 말과 2020년 초,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은 연달아 국회를 통과했다. 조 전 장관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동의하지 못한 국민들의 “우리가 조국이다” 외침이 정부·여당에 적잖은 도움 됐다.

후임 법무부 장관에 문 대통령은 또 다시 비검찰 출신을 앉혔다. 국정 후반기로 넘어가는 만큼, 검찰 개혁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판단이었다. 추미애 의원이 지명됐다. 판사 출신으로 5선 국회의원에 당대표까지 역임한 정치 거물은 법무부 수장에 올랐다. 추 장관의 법조인 이력과 개혁 성향은 강 전 장관을 떠올리게 한다.

법무부 장관의 불행한 역사는 반복됐다. 인사청문회 당시 제기된 추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이 검찰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의혹은 조 전 장관 사태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야당은 "내가 당직사병이다" 구호를 들고 나왔다. 여권 지지층이 조 전 장관을 비호하며 활용했던 문구가 패러디돼 제보자 옹호에 쓰였다. 여권과 야권의 감정적 충돌 지점이다.

문 대통령은 아직 대선 공약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숙원은 미완의 꿈으로 머무르고 있다. 지난 7월15일 법정시한을 넘겨 실체 없는 조직으로 남아 있는 공수처의 출범은 추 장관 의혹에 덮혀 여전히 난망하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검찰 개혁 완성’으로 평가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선 전면 재검토 요청이 봇물처럼 터진다.

추 장관 낙마 여부는 문재인 정부, 즉 진보 정권 남은 임기 내에 검찰 개혁이 마무리되느냐와 밀접한 관련 있다. 노무현 정부 이후 보수 정권 9년 동안 ‘비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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